그린힐 라이프

60대 가을 라이프 아카이브 ⑥ 당진 시골 농가에서 시작된 뜻밖의 가을걷이

essamba329 2026. 10. 16. 10:45

처남이 떠난 뒤 남겨진 가을걷이, 60대에 다시 낫을 들었습니다

여름에 갑작스럽게 떠난 가족이 남긴 농사일!  들깨를 베고, 고구마를 캐고, 벼 수확을 부탁하면서 하나씩 마무리해 가는 60대의    가을 이야기입니다.

1. 올가을은 예년과 다르게 찾아왔습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 잘 익은 곡식과 풍성한 수확의 계절입니다.

 

저 역시 가을이면 산행도 하고,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여행도 떠나는 평범한 60대 후반의 일상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가을은 조금 다릅니다.

 

마음 한편에 여름부터 내려놓지 못한 일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충남 당진(합덕) 시골집에 남겨진 농사일입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무더위가 이어지던 날이었습니다.

92세의 연로한 장인을 비롯한 가족들을 돌보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처남이 논에 물을 대러 나갔다가 온열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돌봄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계절은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처남이 봄부터 정성껏 가꾸어 놓은 농작물들이 수확할 때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이 심어 놓은 농작물은 계절에 맞춰 여전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올가을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2. 마음속에 남아 있던 숙제, 시골 농사

지난 주말에도 결혼식과 축구, 조문 등 여러 일정으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꼭 가야 할 자리를 찾아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당진 시골 농가가 있었습니다.

 

'들깨는 이제 베어야 할 텐데.'

'고구마는 언제 캐야 하나.'

'벼는 누가 수확해 주지?'

생각해 보면 제가 직접 벌여 놓은 농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남이 살아 있었다면 계절에 맞춰 하나하나 해냈을 일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남겨진 가족들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농사일은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때를 놓치면 수확에 어려움이 생기고, 일손을 구하지 못하면 그동안의 수고가 허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고, 어려운 일은 주변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저의 가을걷이가 시작됐습니다.

수확할 때가 되어 기다리고 있던 농작물들
수확할 때가 되어 기다리고 있던 농작물들

3. 가장 먼저 들깨부터 베었습니다

가을걷이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음이 급했던 것은 들깨였습니다.

들깨는 익어 가는 시기를 살피며 적절한 때에 베어 말려야 합니다. 너무 늦어지면 씨앗이 떨어질 수 있어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조퇴를 했습니다.

짬을 내어 당진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입니다.

 

시골 밭에 도착하니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작물들이 가을빛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누렇게 물들어 가는 들깨와 콩, 땅 위를 덮은 고구마 줄기, 수확을 기다리는 논까지 밭을 둘러보니 해야 할 일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낫을 들고 들깨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밭일이라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았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줄기를 모으고, 베어 낸 들깨를 가지런히 눕히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줄씩 베어 나가니 조금씩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베어 낸 들깨는 밭에서 잘 마르도록 펼쳐 놓았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마른 뒤에는 들깨를 털고, 씨앗을 모으고, 뒤처리까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숙제를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멈춘 밭에서, 남겨진 사람이 다시 낫을 들었습니다.

그날의 들깨밭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올해 가을걷이의 시작은 들깨 베기였습니다
올해 가을걷이의 시작은 들깨 베기였습니다. 잘 마르도록 밭에 펼쳐 놓은 들깨입니다

들깨 다음은 고구마였습니다.

고구마는 혼자 캐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시골에 계신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무성한 줄기를 걷어 내고 흙을 파헤치자 붉은빛 고구마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수확 상태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습니다.

 

고구마가 충분히 굵어지지 못하고 작고 가느다란 것들이 많았습니다.

재배 기간이나 생육 환경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컸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처남과 함께 고구마를 캤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함께 일할 사람이 있었고, 농사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있었습니다.

 

올해는 그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구마를 캐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난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수확이 넉넉하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마무리하고 있구나.'

 

농사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동안의 수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날은 큰 고구마보다 작은 고구마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가을걷이는 몸을 움직여야 비로소 끝나는 일입니다지난해보다 작게 여문 고구마, 그래도 귀한 수확
가을걷이는 몸을 움직여야 비로소 끝나는 일입니다. 지난해보다 작게 여문 고구마, 그래도 귀한 수확

5. 벼베기는 마을의 도움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들깨와 고구마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니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논의 벼였습니다.

벼 수확은 개인이 낫을 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농기계와 작업할 사람을 구해야 하고, 수확한 벼를 어디에 옮겨 말릴 것인지도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진 합덕읍의 이장님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오늘은 인부 두 분과 농기계를 이용해 벼베기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수확한 벼는 인근 비닐하우스로 옮겨 건조를 부탁했습니다.

 

저녁 무렵, 일이 잘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릅니다.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시골에서는 이웃과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낍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누군가 손을 보태 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올해 가을걷이는 농작물만 거두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도움과 고마움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벼베기를 기다리던 당진의 논벼베기를 기다리던 당진의 논
지난 여름 자라고 있던 벼 그리고 벼베기를 기다리던 당진의 논

6. 아직 끝나지 않은 가을걷이, 콩과 들깨가 남았습니다

벼 수확까지 마무리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는 콩도 베어야 합니다.

 

밭에서 말리고 있는 들깨도 상태를 살펴 잘 털어야 합니다.

수확한 농작물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끝내면 다음 일이 보이고, 또 하나를 해결하면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농촌의 가을을 그저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해 직접 겪어 보니 가을걷이는 단순히 곡식을 거두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봄부터 이어 온 누군가의 노동을 마무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때 사람을 구하고, 날씨를 살피고, 남은 일정을 맞추는 일까지 모두 농사의 일부였습니다.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해나가려 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가을 숙제, 마른 들깨 털기 그리고 콩 수확아직 남아 있는 가을 숙제, 마른 들깨 털기 그리고 콩 수확
아직 남아 있는 가을 숙제, 마른 들깨 털기 그리고 콩 수확

7. 60대 후반, 삶은 생각하지 못한 숙제를 내줍니다

퇴직 후의 삶은 조금 더 여유로울 줄 알았습니다.

건강을 챙기고, 축구도 하고, 산에도 다니고, 좋아하는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며 보내는 생활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즐거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책임을 맡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가을걷이를 하면서 그 사실을 더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여 해보고, 전문적인 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몸은 피곤했습니다.

수확이 만족스럽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씩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냈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방법을 찾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여 해보고, 전문적인 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여 해보고, 전문적인 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여 해보고, 전문적인 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8. 올해 가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면 산과 들이 아름답게 물듭니다.

누군가는 단풍 구경을 떠나고, 누군가는 가을 여행을 즐깁니다.

 

저도 그런 가을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올해 저에게 가을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낫을 들고 들깨를 베던 밭, 흙 속에서 작게 자란 고구마를 꺼내던 순간, 벼베기가 잘 끝났다는 연락을 기다리던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곁에 없는 처남이 남겨 놓은 농사일을 조금씩 마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콩 수확과 들깨 털기가 남아 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는 날에는 다시 한번 시골 밭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습니다.

 

올해 가을은 풍성한 수확만을 기대하는 계절이 아닙니다.

남겨진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책임을 다해 보는 계절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60대 후반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인생 공부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가을걷이, 그래도 하나씩 해나갑니다
예상하지 못한 가을걷이, 그래도 하나씩 해나갑니다

♣  라이프 튜너 이쌈바의 한 줄 기록

오늘도 직접 살아보고 기록했습니다.

60대의 하루를 직접 살아가며 느낀 작은 변화들을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하겠습니다.

라이프 튜너 이쌈바는 건강, 생활, 여행, 그리고 사람과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을 한 편 한 편 진심을 담아 기록해 가겠습니다.

♣  오늘의 한 줄

“올해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는 일인 동시에,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시간을 하나씩 마무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올해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는 일인 동시에,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시간을 하나씩 마무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올해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는 일인 동시에,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시간을 하나씩 마무리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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